<여의도의 한 커피숍의 천장. 모두 커피 원두로 수 놓았다고 합니다.>
한 해 무려 600억 달러어치가 유통되고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무려 세계 10위 커피 소비국인데요, 자판기 커피나 인스턴트커피부터 고급스러운 카페의 커피까지,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다양한 형태로 매우 친숙하고, 일상적인 음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 먼 에티오피아에서 자라던 커피가 우리나라에까지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이번 첫 칼럼에서는 바로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를 시대별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1. 고종황제에서 일제치하까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1830년경 선교활동을 하러 왔던 프랑스 신부들이 마시면서 알려졌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전해지는 기록은 없습니다. 커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미국유학을 했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 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는 이 책에서 서양인들이 커피를 우리나라의 숭늉이나 물처럼 즐겨 마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90년 전후로 여겨지는데 공문서에 기록된 바로는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던 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덕수궁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커피 맛을 잊지 못해 종종 끓여먹었다고 하니, 진짜 커피 애호가였던 듯....... 고종은 이토록 좋아했던 커피 때문에 죽을 뻔도 했습니다. 친러파 몰락 이후 유배를 가게 되어 고종에게 앙심을 품었던 김홍륙이라는 사람이 요리사를 매수해서 고종이 마실 커피에 다량의 아편을 넣게 했었다는군요. 다행히도 고종이 평소와 커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채고 더 마시지 않았고, 암살기도가 밝혀져 김홍륙은 결국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커피는 왕실에서 고급관료들을 거쳐 양반들에게로 확대되었지만, 서민들이 접하기에는 아직 먼 음료였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숍은 러시아 외교관 웨베르가 지은 ‘손탁호텔’ 이었습니다. ‘정동구락부’라고도 불렸던 이 곳을 다녀간 유명인 으로는 마크 트웨인과 윈스턴 처칠이 있습니다. 이후 다른 호텔들에서도 커피숍을 부대시설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다방은 ‘청목당’ 과 ‘이견’ 이란 이름의 일본인이 경영하는 곳들이었는데, 커피의 효능이 강조되고 예술가들에게 공유되면서 몇몇 다방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각종 영화인들과 문학인들이 직접 경영함으로써 예술인들이 모임 장소를 제공하였는데, 이러한 예술인들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시인 ‘이상’ 이 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2. 해방, 그리고 1950년대
이 시기에 다방들은 서울 시내 곳곳에 생겨났는데 이를 통해 서민들도 커피를 접하기가 수월해졌습니다. 또 6.25 전쟁 때 주한 미군을 통해서 처음으로 인스턴트 커피가 전해졌는데, 소위 씨레이션 박스(모르시는 분을 위해^^, ‘씨레이션’은 미군전투식량의 약자입니다. ) 속에 들어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이 까만 가루가 뭔지 몰라 입에 넣어보고는 써서 바로 뱉었다는 등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었의 용도를 몰라 웃지 못 할 에피소드들도 여럿 있었다고 하네요. 또한 전쟁 중 피난시절 서울의 다방들은 폐업하고 부산에 ‘금강’, ‘밀다원’ 등 몇몇 다방들이 생기게 되었는데, 피난 온 여러 문인들이 모여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3. 1960년대
다방이 증가함에 따라 퇴폐적으로 변질되는 곳도 늘어났는데 흐트러진 커피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박정희 집권 시대인 이 시기에 공무원과 회사원의 다방 출입이 제재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다방 문화의 전성기였습니다. 4.19와 더불어 국산품 애용운동이 일어나면서 최초로 국산 커피가 생산되었으나 아직 기술이 미흡하던 때라 맛에서 수입품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군요. (무슨 맛이었을지.......) 더욱 귀한 음료로 여겨지게 된 커피의 밀수가 횡행하면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더 나은 품질의 국산 커피 생산을 장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커피는 따뜻한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풀고 무려 참기름까지 떨어뜨린, 나름 영양을 고려한.....커피였다고 합니다. 지금 시도해 보실 분, 없나요? ^^;;

4. 1970년대
이 시기에는 지금도 건재한 Maxwell House가 생기면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인스턴트커피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커피믹스가 제조되고, 상표명이 고유명사가 되어버릴 만큼 유명해진 ‘프리마’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입니다. 다방들은 인스턴트커피의 등장으로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 때 나타난 것이 마담과 레지입니다. 이들은 외모가 수려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미인계로 손님들을 다방으로 끌어 모으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던 거죠. 또 음악다방이 생겨났는데 음악다방은 “다방” 대신“coffee shop"이란 명칭으로 불리면서 다방의 쇠퇴를 예고했다고나 할까요. 뭇 여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디스크쟈키가 노래를 틀어주는 음악다방은 변변한 모임장소가 없던 대학생들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이 때 유행했던 커피는 일명 ‘해장 커피’. 서울의 몇몇 고고클럽에서(영화 고고70에 나오죠) 밤새워 놀다 새벽에 나온 젊은이들이 아침 첫 차가 다니기 전에 다방에 들려 해장할 겸 커피를 마셨다고 합니다. 한편, 1970년 대 말에 자판기가 생겨나면서 학생들이 보다 손쉽게 커피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신문기사의 제목이 ‘코피 自動판매대 등장’. ‘코피’가 웃기다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인지...
5. 1980년대
고객들의 수요에 맞춘 다양한 다방들이 등장했지만 곳곳에 즐비한 다방과 변질된 다방 문화를 개탄하는 목소리도 커져가던 이 시기에 안성기가 등장하는 cf로 널리 알려진 맥심이 탄생하게 됩니다. 외국 기업인 네슬레도 우리나라 시장에 진출하게 됩니다.
<어라? 조인성이 아니네요?>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덕분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원두커피의 맛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들이 원두커피를 찾게 되면서 가정용 원두커피도 유행합니다. 88년 말에는 압구정에서 '쟈뎅Jardin'이라는 원두커피전문점이 최초로 생겨납니다.
6. 1990년대
이 시기에는 네슬레의 성장으로 커피시장에서 동서식품과의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한편, 자판기 보급이 확대되고 캔커피가 처음 생기게 되면서 저렴한 가격의 커피시장을 형성하게 되고, 고급화된 전문점에서 비싼 커피를 판매함으로써 어중간한 위치의 다방은 점차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커피 전문점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식사와 커피를 함께 파는 곳도 늘어났는데 이들의 주 고객은 20~30대 젊은 계층이었습니다. 1999년 유명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가 국내에 진출하였는데 커피의 품질도 좋을뿐더러 분위기와 더불어 take-out, self service라는 새로운 커피 문화를 선도하였습니다.
7. 2000년부터 현재
동서식품과 네슬레는 서로 다른 고객층을 타깃으로 경쟁을 계속하게 됩니다. 동서식품은 사랑을 테마로 한 부드러운 분위기로 40~50대 고객을 사로잡았고 네슬레는 성공한 커리어우먼과 커피를 접목시켜 20~30대 직장인을 주 고객층으로 하였습니다.
스타벅스의 성공은 파스쿠찌, 커피빈 등 다른 외국 커피 전문점의 증가를 불러왔으며 이러한 전문점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커피 문화가 탄생하였습니다. 녹두나 입구역만 해도 수많은 카페들이 있죠.
<참고> :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강준만, 오두진 지음)
월간 커피
http://www.snulife.com/clubcolumn01/5710821와 본문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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